김일성 “동족 핵무기 상상 못 한다” 발언… 최초 북핵 협상 결렬 원인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발효 당시 김일성 주석의 '동족 멸살 핵무기 상상불가' 발언과 달리, 최초의 남북 핵 협상이 결렬된 과정과 원인이 통일부가 공개한 문서로 드러났습니다.
1992년 2월 18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공식 발효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김일성 주석은 남측 대표단과의 면담을 통해 "동족을 멸살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탈냉전 분위기 속에서 북한의 핵 개발 초기 국면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 시기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였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김일성 주석은 당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된 것에 대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해 나가는 데 있어 획기적인 사변"이라며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또한, 핵 개발 의혹에 대해 "우리에게는 핵무기가 없는 것은 물론 그것을 만들지도 않고 만들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도출 과정에서 남북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습니다. 우리 측은 핵무기 제조 및 보유 금지와 국제사찰을 통한 핵 개발 의지 검증을 강조한 반면, 북측은 주한미군 핵무기 반입 금지와 '팀스피릿' 훈련 중지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상호 사찰은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으로, 국제 사찰과 군사훈련 중지는 각각 북측의 성명 발표와 남측의 훈련 중단 발표로 절충되었습니다.
공동선언 발효 이후, 남북은 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을 위해 32차례에 걸쳐 회담을 진행했지만, 실질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북측은 주한미군 핵무기 전면 사찰을 요구하며 '남북동수사찰'을 거부했고, 우리 측은 '강제 상호사찰' 도입을 압박하며 양측의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신공격성 발언과 말꼬리 잡기 등 격렬한 언쟁이 오갔습니다.
결국, 1992년 12월 13차 핵통제공동위원회 회의를 끝으로 남북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측은 팀스피릿 훈련 재개를 결정하며 북한의 사찰 불응을 문제 삼았고, 북측은 훈련 재개를 대화 파국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최초의 북핵 협상은 결국 평행선을 달리다 끝나버렸고, 당시 북측의 핵 개발 의도나 협상 과정에서의 진정성 여부는 여전히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자료 출처: KBS (네이버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