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전 장관 “이념 광신 시대는 끝났다”…색깔론 비판
냉전 종식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한국 사회에 '친북 좌파' 색깔론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남북 대화 국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박철언 전 정무장관의 발언이 나왔다.
냉전 종식 후 30여 년이 흘렀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친북 좌파'라는 색깔론이 통용되고 있다고 지적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남북 대화가 진행되는 시점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양상이다. 과거 5공, 6공 시절 대북 밀사로 남북 문제에 관여했던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털어놓았다.
박철언 전 장관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UN 총회 연설을 언급하며, 남북한이 군사적 대치 상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안정된 평화를 기대할 수 없으며, 휴전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하고 비무장지대 내 평화시 건설까지 논의될 수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자신 역시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 7년간 대통령의 전권을 위임받아 대북 밀사로서 남북 문제에 깊이 관여했었다고 밝혔다.
1983년 10월 9일 발생한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으로 남북 간 초긴장 상태가 조성되었으나, 오히려 박 전 장관은 이러한 긴장 상황에서 대승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1984년 남한의 수재 발생 시 북한의 수재 물자 지원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이는 이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1985년 7월, 북한과의 비밀회담 제의로 이어졌다.
박 전 장관은 1985년 7월 11일 첫 남북 비밀 접촉 이후, 6공화국 말기인 1991년 말까지 약 6년간 총 42차례의 비밀회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비밀회담을 위해 북한으로 갈 때마다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유서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갈 정도로 목숨을 건 여정이었음을 토로하며, 당시 5공, 6공 시절의 대북 포용 및 북방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사안이었는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85년 9월에는 남북 고향 방문단 교환 방문이 성사되었고, 서슬 퍼런 5공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핫라인이 존재했음을 언급했다. 그는 동해에서 발생한 북한 선박의 우리 영해 침범 사례를 예로 들며, 핫라인을 통해 군 당국과의 소통으로 무력 충돌을 예방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또한, 노태우 정부 시기에는 냉전 종식이라는 국제 질서 변화에 발맞춰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를 추진하는 등 '전방위 자주 세계 외교'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박 전 장관은 당시 일본, 미국 등 우방국과 보수층으로부터 '용공 외교', '졸속 외교', '밀사 외교' 등 많은 비판에 직면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지금도 민족 문제에 있어 진보적 자세를 보이면 '친북 좌파' 또는 '친북 친중 좌파'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은 이념에 대한 광신 시대가 지났으며, 각 국가는 자국의 실익과 국익을 최우선으로 외교 노선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출처: KBS (네이버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