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에 ‘빨갱이’ 낙인 찍힌 김영수 씨, 국가폭력 진실 규명 및 명예회복 호소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한 가운데, 17세 때 납북 후 간첩으로 몰려 10년간 옥살이를 한 김영수 씨가 명예회복을 간절히 호소했다.
지난 7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방 이후 이 땅에서 벌어진 모든 국가폭력 사건 피해자들께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누구도 국가로 인해 억울함을 겪지 않는, 국민의 생명과 인권이 가장 먼저 존중받는 진정한 대한민국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오찬에는 17세에 납북되었다가 귀환 후 평생을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 살아온 김영수 씨(73)도 참석했다. 김 씨는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저희의 빼앗긴 인생, 저희 인생을 좀 구제해 달라"며 "인간답게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 또한, "어디나 하소연할 데가 없다"며 명예 회복을 위한 도움을 절실히 바랐다.
김 씨는 17세였던 1971년 8월,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가 선원들과 함께 북한에 납치되는 사건을 겪었다. 1년간 억류 후 귀환했으나 곧바로 속초시청에 감금되어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더 큰 시련은 1975년 군 입대 후 찾아왔다. 휴가 중이던 1976년 4월, 김 씨는 복귀하지 않은 '미복귀자'라는 이유로 보안부대에 체포되어 서빙고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조사관들은 붉게 표시된 지도를 들이밀며 월북 시도 혐의를 추궁했고, 김 씨는 물고문, 전기고문 등 끔찍한 가혹행위를 견뎌야 했다. "옷을 다 벗긴 뒤에 의자에 묶고 코에 물이 닿을 듯 말 듯한 정도로 욕조에 담가 놓고… 거꾸로 매달아 놓고 코로 물을 부어댔다"는 김 씨의 진술조서는 당시의 참상을 보여준다. 결국 그는 혐의가 없다는 말에 속아 조서 마지막 장에 지장을 찍었고, 이 조서를 근거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1976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법정에서 10년형이 선고되기까지 단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 씨가 영장 없이 37일간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북한 찬양 및 탈북 시도 진술은 가혹행위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3월 국가에 사과와 재심 등 조치를 권고했다. 그러나 김 씨는 지난해 4월 재심을 청구했지만,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검찰이 '재심 청구 기각' 의견을 고수하며 재판이 개시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춘천지검 강릉지청은 김 씨의 신병 구금이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나, 김 씨 측은 수사기관 내부 보고서의 '피검' 용어 사용, 휴가 미복귀자 신분, 수사 카드 기재 등을 근거로 불법 구금이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이는 최근 검찰이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는 태도 변화와도 배치된다.
재심을 기다리는 김 씨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지휘감독권 행사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김 씨 측은 검찰이 불법 구금을 부정하는 것은 공익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며, 법무부 장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김 씨는 "나는 그 대신 '빨갱이'라는 소리만 듣지 않게 해달라"며 "제2의, 제3의 나 같은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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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KBS (네이버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