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100일간의 사투, 생환 선원의 증언
이란과의 긴장 고조로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였다가 100일 만에 귀국한 한국인 선원이 당시 겪었던 극한의 공포와 고립 생활을 전했다.
지난 2월 말 중동 사태 발발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페르시아만 내에 억류되었던 2만여 명의 선원들이 있었습니다. 전쟁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채 해협에 진입했던 이들은 대부분 100일 이상 갇히는 전례 없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KBS는 당시 호르무즈 해협에 고립되었다가 무사히 귀국한 한 한국인 선원 A 씨를 만나 긴박했던 당시 상황과 심경을 들어보았습니다.
A 씨가 탄 선박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이란 전쟁 선포일인 2월 28일, 호르무즈 해협 안쪽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는 “일상처럼 진입했는데, 그날 밤 폭격이 시작되었다”며 두바이 입항 당시 항구 내 정유 시설이 불타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습니다. 전쟁 소식을 접한 선원들은 처음에는 단기 충돌로 여기며 상황을 낙관했지만, 민간 선박까지 공격 대상이 되면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후 이란의 민간 선박 공격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A 씨는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수십 미터 옆에 발사체가 떨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밤낮없는 폭격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외부 노출을 피하기 위해 등화관제를 철저히 하고 작은 문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극도의 긴장 상태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원들은 전쟁 상황에 익숙해지려 노력했지만, 기약 없는 고립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습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선원 A 씨조차 “기간 없이 길어지기만 하는 상황이 가장 힘들고 공포스러웠다”고 토로했습니다. 중간에 해협 통과 허용 소식이 들려 희망을 품기도 했으나, 곧 번복되면서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상황에 지쳐갔습니다.
특히 5월 4일 HMM 나무호 피격 사건은 한국인 선원들의 공포를 극단으로 몰고 갔습니다. A 씨의 선박 역시 당시 나무호와 가까운 곳에 정박 중이었으며, 피격 소식에 선내 대피소로 긴급 대피해야 했습니다. 한국 선박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A 씨는 “우리가 맞을 수도 있겠구나”라며 공포심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 이후 많은 선박들은 페르시아만 안쪽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A 씨는 6월 초 카타르에서 동료와 교대하며 100일간의 고립 생활 끝에 귀국했습니다. 가족과의 재회는 그에게 큰 기쁨이었지만, 당시 상황의 충격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직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수천 명의 선원들을 기억해 달라며, 선원들이 전쟁의 볼모가 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8월 21일 기준 중동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선원은 19명에 달합니다.







자료 출처: KBS (네이버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