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엔 석고로 만든 ‘가짜 머리’… 1962년 알카트라즈 탈옥 사건, 탈옥수 3명은 살아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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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6월 알카트라즈 교도소에서 프랭크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가 가짜 머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FBI는 1979년 수사를 종결했지만 미 연방보안관실은 지금도 사건을 열어 두고 있다.

알카트라즈 탈옥 사건 감방 침대에 남겨진 가짜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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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이 불가능한 감옥’으로 불리던 미국 샌프란시스코만의 알카트라즈 연방교도소에서 1962년 6월 재소자 3명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침대에는 석고와 살색 물감, 진짜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짜 머리가 놓여 있었다. 6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이들이 바다를 건너 살아남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공개한 수사 기록과 당시 뉴스 영상을 토대로 사건을 정리했다.

알카트라즈 탈옥 사건, 1962년 6월 12일 아침 점호에서 드러났다

FBI 기록에 따르면 1962년 6월 12일 새벽 정기 점호에서 프랭크 모리스와 존 앵글린, 클래런스 앵글린 형제가 감방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침대에 놓인 가짜 머리가 밤사이 순찰하던 교도관들의 눈을 속인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는 즉시 봉쇄됐고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됐다.

  • 탈옥 시점: 1962년 6월 11일 밤(발견은 12일 아침 점호)
  • 탈옥수: 프랭크 모리스, 존·클래런스 앵글린 형제
  • 공모자: 앨런 웨스트(감방 환풍구를 다 뜯지 못해 남겨짐)
  • 알카트라즈 운영 기간(1934~1963년) 탈옥 시도: 36명, 14건

진공청소기 모터로 만든 드릴, 레인코트 50벌로 만든 보트

모리스는 1960년 1월 은행 강도 등으로 알카트라즈에 들어왔고, 같은 해 존 앵글린이, 이듬해 초 클래런스 앵글린이 들어왔다. 세 사람은 다른 교도소에서부터 알던 사이였고, 이웃한 감방에 배정되면서 탈옥을 꾸몄다.

이들은 1961년 12월 낡은 톱날을 손에 넣으면서 계획을 시작했다. 고장 난 진공청소기 모터로 만든 드릴 등 조잡한 도구로 감방 뒤 환풍구 주변에 촘촘히 구멍을 뚫어 벽 일부를 떼어 냈고, 구멍은 여행 가방이나 판지로 가렸다.

알카트라즈 탈옥수들이 뚫고 나간 감방 환풍구와 배관
탈옥수들이 드나든 감방 뒤편 환풍구와 설비 통로 · 영상 캡처: British Pathé(1962)

감방 뒤편에는 경비가 없는 공용 설비 통로가 있었다. 이들은 통로를 타고 감방동 꼭대기로 올라가 비밀 작업장을 차렸다. 훔치거나 모은 레인코트 50여 벌을 이어 붙여 구명조끼와 가로세로 약 1.8×4.3m(6×14피트)의 고무보트를 만들었고, 이음매는 교도소의 뜨거운 증기 파이프로 눌어붙게 했다. 나무 노와 악기를 개조한 공기 주입기도 만들었다. 지붕으로 나가는 환풍구 덮개는 비누로 만든 가짜 볼트로 임시 고정해 뒀다.

6월 11일 밤, 빵 공장 굴뚝 타고 내려가 바다로

6월 11일 저녁 세 사람은 통로로 빠져나가 장비를 챙긴 뒤 환풍구를 통해 교도소 지붕에 올랐다. 이어 감방동 뒤 빵 공장 굴뚝을 타고 내려와 철조망을 넘었고, 섬 북동쪽 해안에서 보트를 띄웠다. 계획은 엔젤섬에 닿은 뒤 래쿤 해협을 건너 마린 카운티로 가서 옷과 차를 훔치는 것이었다고 FBI는 웨스트의 진술을 토대로 밝혔다.

영상: British Pathé 공식 유튜브 ‘Escape From Alcatraz (1962)’

수색 과정에서 고무로 밀봉한 편지 꾸러미, 노처럼 생긴 나무 조각과 고무 조각이 바다에서 발견됐다. 손수 만든 구명조끼 하나는 크론카이트 해변으로 떠밀려 왔다. 하지만 세 사람의 시신이나 생존 흔적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1962년 탈옥 직후 알카트라즈 섬 주변을 수색하는 보트
탈옥 직후 알카트라즈 섬 주변 바다를 수색하는 보트 · 영상 캡처: British Pathé(1962)

FBI “살아남았을 가능성 낮다”… 1979년 수사 종결

FBI는 17년간 수사한 끝에 1979년 12월 31일 사건을 공식 종결하고 미 연방보안관실(U.S. Marshals Service)에 넘겼다. FBI가 생존 가능성을 낮게 본 근거는 이렇다.

  • 차가운 수온과 강한 조류 때문에 만을 건너기가 매우 어려웠다.
  • 육지에 닿으면 옷과 차를 훔칠 계획이었지만 그런 도난 신고는 확인되지 않았다.
  • 가족들이 도움을 줬다는 증거도, 그럴 만한 경제적 여력도 확인되지 않았다.
  • 17년 동안 국내외 어디에서도 생존을 뒷받침할 믿을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연방보안관실은 지금도 이 사건을 미해결 상태로 두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2014년 조류 시뮬레이션 “밤 11시 30분~자정 출발했다면 가능”

반론도 나왔다. 2014년 12월 네덜란드 델프트공대(TU Delft)와 연구기관 델타레스 연구진은 그날 밤 샌프란시스코만의 조류를 재현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미국지구물리학회(AGU)에서 발표했다. 밤 11시 30분에서 자정 사이에 출발했다면 금문교 북쪽 해안에 닿을 수 있었고, 그보다 일찍 떠났다면 조류에 휩쓸려 먼바다로 나갔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연구진은 “살아남았다는 증거는 아니지만 가능성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출발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2018년에는 존 앵글린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2013년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보낸 편지가 공개돼 다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세 탈옥수의 필적과 비교한 분석 결과는 ‘결론을 내릴 수 없음’이었다.

알카트라즈 탈옥수 프랭크 모리스 수배 기록 사진
당시 공개된 탈옥수 신원 기록 · 영상 캡처: British Pathé(1962)

정리: 알카트라즈 탈옥, 확인된 것과 모르는 것

  • 확인된 것: 탈옥 날짜(1962년 6월 11일 밤), 탈옥수 3명, 환풍구·지붕·굴뚝을 거친 탈출 경로, 레인코트 보트
  • 모르는 것: 실제 출발 시각, 보트가 닿은 곳, 세 사람의 생사
  • 현재: FBI는 1979년 종결, 미 연방보안관실은 미해결 사건으로 수사 중
  • 알카트라즈 교도소는 이듬해인 1963년 문을 닫았고, 지금은 국립공원 관광지로 운영된다.

참고: FBI History ‘Alcatraz Escape’, Science News(2014.12.17), BBC News(2014.12.15), AP(2014.12.18), TU Delft Delta(2015.1.25), PBS(2018.1.26). 이미지: British Pathé 1962년 뉴스 영상 캡처. 영상: British Pathé 공식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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